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에 바라본 오늘의 전태일들50년 전 청년 전태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10월의 [NCCK가 주목하는 시선 2020] / 김주언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 50주기에 바라본 오늘의 전태일들>
코로나19 사태로 실업자가 늘어나고 임금이 삭감돼 고통을 받는 국민이 많아졌다. 열악한 노동환경은 달라지지 않아 산업재해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특히 올해 들어서만 과로사 등으로 목숨을 잃은 택배노동자가 11명에 달한다. 노조 조직률은 10% 남짓에 머물러 단체협약도 없이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도 많다. 비정규직 노동자도 절반에 가깝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의 죽음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1970년 11월13일 22살의 재단사 전태일이 외친 말이다.
‘아름다운 청년’ 전태일은 청계천 평화시장 앞에서 가슴에 근로기준법 책을 품고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다. 살아 있으면 72살의 노년기에 접어들었을 젊은 청년의 피 끓는 외침은 반세기가 지난 오늘도 청계천에 울려 퍼진다. 그렇다면 현재 노동자들의 노동조건은 나아졌는가.
전태일은 평화시장에서 일하는 여성들을 위해 바보회라는 모임을 만들고 근로기준법을 가르쳤다. 인간답게 대접받을 권리를 모르고 기계처럼 살아가기 때문에 스스로 바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는 당시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낸 탄원서에서 이렇게 썼다. “2만여 명 중 40%를 차지하는 시다공들은 평균연령 15세의 어린이들로, 성장기에 있는 이들은 회복할 수 없는 치명적 타격을 입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영세민의 자녀들로 굶주림과 어려운 현실을 이기려고 하루 90원내지 100원의 급료를 받으며 하루 16시간의 작업을 합니다.”
탄원서는 이어진다. “평균20세의 숙련여공들은 대부분 햇빛을 보지 못해 안질과 신경통, 신경성위장병 환자입니다. 호흡기관 장애로, 또는 폐결핵으로 많은 여공들은 생활의 보람을 못 느낍니다.
응당 기업주는 건강진단을 시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법을 기만합니다. 한 공장의 30여명 직공 중 겨우 2명이나 3명 정도를 병원에서 형식상 진단을 마칩니다. X레이촬영 시에는 필름도 없이 촬영하며 사후지시나 대책이 없습니다. 1인당 300원의 진단료를 기업주가 부담하기 때문입니까?”
그는 3가지 사항을 요구했다. 1일 작업시간을 14시간에서 10~12시간으로 단축하고, 1개월 2일 휴일을 일요일마다 쉬도록 희망했다. 시다공의 수당 70~100원을 50%이상 인상해달라는 요구도 포함됐다. 당시 자장면 한 그릇 값(100원)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당을 올려달라는 최소한의 요구였다. 특히 건강진단을 정확하게 해달라고 요구했다. 그러나 탄원서는 박대통령에게 전달되지 못했다. 정부대책은 없었다. 언론은 철저히 외면했다.
전태일의 죽음은 한국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몰고 왔다. 대학생과 지식인들은 비참한 노동자들의 현실에 충격을 받았다. 노동자와 도시빈민의 삶에 주목하기 시작한 것도 이때부터이다. 대학생들은 야학을 만들어 노동자들을 교육시키는 데 앞장섰다. 일부는 공장에 취업해 노동조합을 조직하기도 했다. 정부와 언론은 이들을 ‘불온한 위장취업자’로 낙인찍었다. 노동운동도 활기를 찾아 곳곳의 현장에서 파업과 농성이 이어졌다. YH무역 노조의 신민당사 점거농성은 무참하게 진압됐다.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의 전조였던 셈이다.
노동자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조를 세웠다. 70년대에는 청계피복노조 이외에 동일방직, 콘트롤데이타, 반도상사, 원풍모방, YH무역 등 많은 사업장에서 노조가 세워져 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활동한다. 70년대에 세워진 노조는 대부분 공단지역 영세 노동집약적 사업장에서 설립됐다. 여성노동자들이 중심이 되었던 점도 기억할 만하다. 1987년 6·10시민항쟁 이후 87년 노동자 대투쟁에 이어 현대, 대우 등 대기업 남성노동자 중심의 사업장에서 노조가 대거 세워지기 전까지 한국 노동운동의 주도적인 흐름을 형성했다.
언론의 노동관련 보도
전태일은 생전에 국립공원에서 죽은 크낙새가 톱기사로 등장한 것을 부러워했다. 자신들의 열악한 노동환경이나 잠 안 오는 약을 먹어가며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어린 여공들의 삶은 도외시했기 때문이다. 70년대에는 노동관련 뉴스는 철저하게 보도지침으로 통제됐다. 크낙새가 죽었다거나 황새가 죽어간다던 뉴스, 또는 당시 창경원 동물들이 새끼를 낳았다는 기사가 신문지면을 장식했다. 이른바 ‘조권(鳥權)’이 인권(人權) 보다 중요시되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전태일 열사의 활동은 경향신문을 통해 알려졌다. 전태일은 바보회 활동을 함께 하던 친구들을 규합하여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활동한다. 1970년 10월6일 청계천 피복공장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조사한 노동실태 보고서 ‘평화시장 근로개선 진정서’가 노동청에 제출됐다.
설문지 126장이 첨부됐다. 2평 작업장에 15명씩 몰아넣고, 폐결핵 신경통 위장병을 달고 살며, 각혈하는 16세 소녀에게 피로해소제 주사를 놔 밤새 특근시키는 무법천지가 담겼다.
다음날 경향신문은 사회면 머리기사로 ‘골방서 하루 16시간 노동’을 보도했다. 당시 정부소유 신문으로선 이례적이었다. 10대 노동자 3만 명이 혹사당하는 청계천 일대 피복공장 실상이 처음 알려졌다. 발칵 뒤집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정부는 국정감사 중에만 몸을 낮췄고 문제해결을 약속한 업주들은 답이 없었다. 이후 정재계는 그들의 활동을 사회주의라는 빨간 딱지를 붙이고 노동자들이 참여하지 못하도록 방해했다. 이러한 색깔공세는 전두환 정권까지 독재정권 시절 내내 지속됐다.
그렇다고 해서 언론이 노동자들에게 우호적으로 접근한 적은 별로 없다. 70년대 말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한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을 당시에는 ‘도산(도시산업선교회)이 들어오면 도산한다’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며 노동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 80년대 후반 노동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졌을 때는 경제위기와 시민불편을 내세워 불법으로 매도했다. 파업이나 시위과정에서 과격한 충돌이 벌어지면 이를 대서특필해 노동자들을 과격집단으로 몰아넣었다. 생산차질로 인한 손실액을 부풀리는 등 사용자 논리가 언론보도의 주를 이루기도 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노동문제를 다룬 보도는 드물었다. 임금인상이나 노동현장 개선을 요구하는 노동자들의 목소리는 작게 취급됐다. 결국 사회의 이목을 끌기 위해 노동자들은 극한투쟁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을 감수하고 1년 넘게 고공농성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이 나타난 것도 이 때문이다. 최근에는 산업재해나 과로로 수십 명의 노동자들이 사망하는 등 파급력이 큰 사안에 대해서만 관심을 갖는다. 노동문제를 전문으로 다루는 기자들이 매우 드문 현실은 이를 뒷받침한다.
반세기 이후의 노동현실
그렇다면 전태일의 산화이후 50년이 지난 지금 그의 외침은 제대로 실현되고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현장 노동자 10명중 4명은 근로기본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인식하고 있다. ‘직장갑질119’의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9,9%가 근로기준법이 잘 지켜지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엠브레인 퍼블릭, 직장인 1,000명, 95% 신뢰수준 표본오차 ±3.1%p) 일터에서 가장 지켜지지 않는 법규는 ‘노동시간과 휴가’(51%), ‘임금 및 연장야간휴일 수당, 퇴직금 체불’(48%)이었다. 모성보호(보건휴가, 산전후 휴가, 육아휴직 등)가 준수되지 않는다는 응답도 32.8%였다.
1953년 제정된 근로기준법은 1997년 새 법이 제정 공포된 이후 24번 개정됐다. 5인 이상 근로자를 고용한 사업장은 정당한 근로계약 아래 제대로 된 임금을 받고 적정한 근로시간과 휴식을 취할 수 있도록 규정돼 있다. 헌법에 명시된 기준마저 제대로 준수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심각한 문제는 이 법마저 적용되지 않는 5인 미만 영세사업장과 비정규직의 상황이다. 구의역과 태안화력발전소에서 그랬듯 이들 중 하루에 7명이 산재로, 1명이 과로사로 죽는다. 법 밖의 노동자, ‘위험한 전태일들’은 50년 이전과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이들의 현실은 반세기전 평화시장 여공들의 열악한 상황을 빼닮았다. 비정규직은 ‘21세기 시다’이고, 일당 50원을 받던 견습공은 현재의 알바이다.
전태일과 비슷한 봉제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주름살은 더 깊어졌다. 여전히 근로계약서조차 쓰지 못한 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다. 50여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시다’로 불리던 이들은 ‘사장님’이 됐지만,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해야 겨우 먹고살 수 있다. 노동법 밖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도 변한 게 없다.
택배노동자들의 잇따른 과로사
특수고용직인 택배노동자들의 과로사도 잇따라 발생하고 있다. 올해 들어 벌써 12명의 택배노동자가 과로사로 세상을 떠났다. 이들의 과로사는 ‘구조적 타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주 평균 71시간이 넘는 살인적 노동시간을 감내하며 일하고 있다.
재벌 택배회사들이 이들에게 분류작업을 강요하기 때문이다. 택배노동자들은 하루 노동시간의 절반에 가까운 시간을 분류작업에 할애하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택배물량이 늘어나면서 택배노동자의 고통은 급격하게 상승했다.
노동계는 택배노동자들의 장시간노동을 단축시키는 방안으로 분류작업 별도 인력 투입을 요구했다. 재벌택배회사들이 당장이라도 시행할 수 있는 방안이었다.
재벌택배회사들은 분류작업에 추가인력을 투입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눈가림이행에 그쳤을 뿐이다. 재벌택배회사들은 추석 전 2,067명의 분류작업 인력을 추가로 투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로는 400명에도 미치지 못했다. 이마저도 노동조합이 있는 터미널에만 투입했을 뿐이다.
10월중 과로로 사망한 CJ대한통운과 한진택배 택배노동자들의 작업현장에는 분류작업 추가인력이 투입되지 않았다.
재벌택배회사는 택배노동자들의 잇따른 과로사에 충격을 받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국민과 정부를 기만했다. 단 한 번의 진정성 있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유족에 대한 응당의 책임을 다하지도 않았다. 특히 CJ대한통운은 산재보험 적용제외 신청서를 대필하여 제출하는 등 꼼수를 부리기도 했다. 게다가 한진택배는 고인의 평상시 업무량이 다른 택배기사보다 적었고 지병으로 사망한 것이어서 과로사가 아니라는 등 사망원인을 은폐하고 왜곡했다.
정부도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 노동부와 국토교통부는 장관 이름으로 심야배송을 하지 않는 등 택배노동자의 휴식보장을 위한 선언을 발표했다.
국토교통부는 매일 점검하고 노동부는 현장지도를 하겠다고 약속했다. 하지만 보여주기에 불과했을 뿐이다. 10월12일 사망한 한진택배의 택배노동자는 계속적 심야 업무에 시달린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이다. 고인이 남긴 카톡메시지에는 새벽 4시30분, 새벽2시 등에 업무가 종료됐던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반복되는 ‘위험의 외주화’ 참사
한국의 코로나19 방역은 세계적 찬사를 받는다. 그러나 세계최고의 산업재해왕국이라는 오명은 씻지 못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사업장 가동률이 낮아졌음에도 산재사망은 더욱 증가하고 있다.
매년 2,000명 이상의 노동자가 일터에서 목숨을 잃고 죽어간 그 자리에서 또 다른 노동자가 일하다가 죽는다. 산재사망과 세월호 참사, 가습기 살균제 참사와 같은 사회적 참사가 반복되지 않으려면 원청기업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통해 예방하는 방안이 지름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끊이지 않는다. 지난달에는 건설 중인 신서천화력발전소에서 변압기 폭발사고가 있었다.
노동자 4명이 화상을 입었고 그중 한명이 사망했다. 다른 화력발전소 기계점검 공사현장에서는 추락사고로 일용직 청년노동자가 크게 다쳤다. 서산 대산공단에서는 폭발사고가 잇따랐다. 대부분 설비안전점검 문제 때문이다.
화학물질 사고의 40%이상이 설비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해 발생한다. 기업들이 안전보다 이윤을 우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비관리 주체가 사업주라서 강제하기 어렵다.
2년여 전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작업 중 숨진 한국 서부발전 태안화력에서 또다시 사망자가 발생했다. 마모된 스크루를 정비하기 위해 지게차로 차량에 실어 밧줄로 고정하다가 스크루가 떨어져 화물차 기사가 깔려 숨졌다. 숨진 이는 외주업체가 고용한 특수고용직 노동자이다. 외주에 외주를 준 업무였던 셈이다.
김용균씨 사망이후 사회문제로 떠올랐던 ‘위험의 외주화’는 아직도 고질적 문제임이 드러났다. 김씨 죽음 이후에도 여전히 유지되고 있는 구조적 문제가 온존하고 있는 것이다.
공공운수노조는 “안전감독자는 한국서부발전, 정비 업무는 시흥기공, 지게차 운전은 재하청업체의 화물노동자로 이어지는 복잡한 고용구조가 책임과 권한의 공백을 만들어내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 참극으로 이어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용균재단은 “위험의 외주화가 유지되는 한, 왜곡된 고용구조가 유지되는 한, 작업자의 과실로 몰아가는 한, 지금과 같은 죽음은 반복될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하청노동자 사망사고의 책임을 물어 원청을 처벌할 수 있어야 또 다른 사고를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의 제정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는 김씨 사망사고 이후 지난해 산업보건의 위촉 및 의료체계 확립, 노동자의 안전보건활동 참여권 보장 등 작업현장 안전강화를 위한 22개 권고안을 내놨다. 그러나 권고안은 사업장에서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공공운수노조는 “위험업무에 투입되는 하청노동자의 의견이 안전정책에 반영되지 못했고, 응급환자에 대한 신속대응시스템도 구축되지 않아 이번 산업재해 사망사고가 또다시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2015년부터 김용균씨가 목숨을 잃은 뒤인 2019년 8월까지 산재노동자 271명중 98%인 265명이 비정규직 노동자였다. 여전히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죽고 다치고 있다. 한마디로 ‘위험의 외주화’는 김씨 사망 이후에도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부는 정규직 전환을 약속했으나 지켜지지 않고 있다. 김씨가 숨진 뒤 ‘위험의 외주화’를 막는다는 명분으로 28년 만에 산업안전법이 전면 개정됐다. 이른바 ‘김용균법’이다. 그러나 반쪽짜리 법에 머물고 말았다. 시행령에 예외를 폭넓게 인정했기 때문이다.
개정된 산업안전법은 위험한 작업의 경우 정부승인을 받아 하청을 줄 수 있도록 했다. 다만 시행령에 예외를 두도록 규정했다.
시행령에는 황산, 불산 등 4개 화학물질과 관련된 작업에 만 노동부의 승인을 받도록 했다. 원청의 안전책임을 강화한 건설기계도 타워크레인과 건설용 리프트 등 4개로 한정했다. 발전소 시설관리 등 유해 위험업무는 여전히 도급이 가능하게 됐다. 안전을 지키지 않을 경우 기업에 대한 처벌수위도 매우 약하다. 금지대상이 매우 한정됐을 뿐더러 위험판단을 사업주에 맡겨 위험환경은 방치되게 됐다.
김용균씨 죽음이후 원청과 하청 업체 책임자 14명이 기소됐으나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38명이 사망한 한익스프레스 이천참사 수사에서 공기단축을 요구한 발주처의 지시가 드러났으나 경찰은 발주처 대표이사를 기소에서 제외했다.
노동부 감독결과 발표에도 발주처는 빠졌다. 진짜 책임자는 빠져나가는 꼬리 자르기 식 처벌이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발주처가 위험을 방치하고 안전을 무시하며 비정규직 고용구조를 계속 유지하고 있는 이유이다. 따라서 안전조치를 하지 않아 노동자를 사망에 이르게 한 사업주에 대한 처벌을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사회 산업현장의 안전 불감증은 우려할 만한 수준이다. 매일 7명 정도의 노동자가 죽어나가는 데도 산업재해는 끊이지 않는다. 재해가 발생할 때마다 ‘안전 불감증’ ‘또다시 인재’ ‘책임자 엄벌’ 등의 구호가 난무하지만, 용두사미로 끝날 뿐이다. 자본이 아니라 노동과 사람이 먼저 보호받아야 하는 안전사회가 시급한 이유이다.
‘전태일 3법’으로 부활한 아름다운 청년
노동계는 전태일 열사 50주기를 맞아 정기국회에서 ‘전태일 3법’을 통과시키겠다는 각오를 보이고 있다. 전태일 3법은 중소사업장이나 비정규직 노동자의 권리를 대기업 정규직 노동자와 비슷한 수준으로 보장해야 한다는 취지를 담고 있다.
사업장 규모나 고용형태에 따른 근로기준법과 노동조합법, 산업안전법 상의 차별을 해소하는 법안이다. 모든 노동자에게 근로기준법을 적용하고 특수고용직등 모든 노동자들이 노조를 결성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사용자와 원청의 책임과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은 적용범위를 명시한 11조가 대상이다. 현행 근로기준법은 5인 이상 노동자가 일하는 사업장만 적용대상이다. 5인 미만 사업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은 임금이나 노동시간 등 기본적 권리를 주장하기도 어렵고 직장 내 괴롭힘이 벌어져도 보호받지 못하는 현실이기 때문이다. 일부 사업주는 근로기준법 적용대상에서 빠져 나오기 위해 많은 노동자가 일하는 기업을 5인 미만의 사업장으로 잘게 쪼개기도 한다. 심지어는 일하는 노동자수를 실제보다 줄여 보고하는 편법을 일삼는다.
노동조합법도 개정 대상이다. 민주노총은 현행 노동조합법 2조에서 밝히고 있는 노동자의 정의가 협소함을 지적하며 “노동조합을 만들거나 가입하고 활동할 수 있는 권리를 심각하게 제약”한다는 점에 개정 이유를 뒀다. 민주노총은 특히 “특수고용노동자와 간접고용노동자 등 근로기준법에서 배제된 노동자들은 노동조합법에서도 밀어내는 현실”이라며 개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현재 특수고용노동자는 221만 명, 간접고용노동자는 364만 명이며 5인 미만 사업장 노동자는 350만 명에 달한다.
‘기업살인법’으로도 불리는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은 노동자가 숨지는 등의 사고가 나면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처벌하자는 게 주된 내용이다. 안전조치 의무 등을 위반한 것이 확인되면 최장 7년 이상의 유기징역이나 5억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한다. 정의당 강은미의원 등이 발의한 이러한 내용의 법안이 국회에 제출됐다. 하지만 노동계와 시민사회는 이 법안보다 훨씬 강화한 내용의 법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전태일 3법은 국회로 공이 넘어갔다. 지난달 22일, 20만 명의 국민동의를 얻었기 때문이다. ‘30일내 10만 명’이라는 꽤 높은 청원의 벽을 넘었다. 전태일 3법은 이제 국회 환경노동위의 심사를 받는다. 그러나 이 법에 관심을 보이는 정당은 정의당 등 진보정당들뿐이다.
정부와 민주당은 아직 관심 밖이다. 더구나 야당인 국민의 힘은 딴죽을 걸고 나섰다. 김종인 비대위원장이 노동과 임금 유연성 제고를 위한 노동관계법 개정을 정부 여당에 제안한 것이다. 기업을 위해 ‘쉬운 해고’과 ‘자유로운 임금삭감’을 보장하자는 것이 핵심내용이다.
양대 노총은 즉각 반발했다. 민주노총은 “국제기준에 현격히 미달하는 노동관계법을 다루자는 발상은 어디에서 나오나”라고 지적했다. “어떤 방식이든 재벌과 자본의 배를 불리기에 혈안이 돼 있는 김 비대위원장과 만나서 얘기할 용의가 있다”고도 밝혔다. 한국노총도 “보수야당의 ‘조자룡 헌 칼’과 같은 노동법 개선을 언급한 것은 매우 유감스럽다”고 지적했다. “쉬운 해고와 임금삭감을 ‘개혁’이라고 불렀던 ‘도로 박근혜당’으로 되돌아가려는 것 아니냐”는 비아냥도 내놓았다.
민주노총은 “재벌과 자본의 이익에 복무하는 일부 정치인들의 입법거부와 편법, 꼼수가 판을 치며 법안발의 취지와는 상관없는 누더기 법안을 만드는 다양한 시도가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따라서 이를 방어하기 위한 활동에 적극 나설 방침이다. 민주노총은 “전태일 3법은 10만 명의 국민동의 청원에 의한 발의인 만큼 입법 발의자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반영하라”며 “법이 정한 기일 안에 개정과 제정 발의 취지에 맞게 원안의 훼손 없이 입법하라”고 요구했다.
50년 전 청년 전태일은 인간다운 삶을 위해 청춘을 불살랐다. 헌법에 보장된 기본권을 쟁취하기 위한 불길이었다. 그러나 반세기가 지난 현재에도 노동기본권은 온전히 보장되지 않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사태로 수많은 노동자가 해고되거나 임금이 삭감돼 생활고에 허덕이고 있다. 노동은 인간으로서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것이지, 재산축적을 위한 자본권력에 고용된 것은 아니다. 시뻘건 화염 속에 사그라진 전태일 육신은 청계천 그 자리에 동상으로 부활했다. 그의 영혼은 아직도 한국사회에 떠돌고 있다. 그의 죽음과 맞바꿀 만큼 간절했던 소망이 이루어져 동상으로의 부활이 아닌 합리적인 법과 제도로 부활하기를 바라는 것이 2020년 10월 시선 선정의 이유이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언론위원회의 ‘(주목하는) 시선’에는 김당 UPI뉴스 대기자, 김덕재 전 KBS PD, 김주언 열린미디어연구소 상임이사, 심영섭 경희사이버대 겸임교수, 장해랑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교수, 정길화 아주대 겸임교수, 한홍구 성공회대 교수 등이 참여하고 있습니다(가나다순). 이번 달의 필자는 김주언 이사입니다.
<박기문 기자/erunsesang@hanmail.net> <저작권자 ⓒ 인뉴스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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